본문 바로가기
재테크 정보와 부자 이야기 (by ANGEL5)

400년 부의 비밀 경주 교동 최부자 노블레스오블리주 6훈6연

by ANGEL5 2024. 1. 19.
728x90

경주 최부자 이야기

부불삼세(富不三世),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12, 400여 년 역사의 만석꾼(1년 쌀 수확량이 1만석인 대단한 부자)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가 있다. 1600년대 초 처음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최진립으로 최부자 집은 광복 직후 모든 재산을 바쳐 대학을 설립한 최준(1884~1970)까지 대를 이었다.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은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고 이 사실이 발각되어 남은 재산으로 세운 대학이 오늘날 남아있는 영남대학교이다. 조선시대 최고 부자였던 경주 최부자는 최치원의 17세손인 최진립부터 28세손인 최준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간 만석꾼의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집안 대대로 철칙으로 내려오는 6가지 가훈에 있었다.

[경주 최부자 종가댁 솟을대문으로 지어질 당시 99칸이었으나 현재는 큰 사랑채와 안채, 솟을대문과 곳간 등이 남아있다. (사진:경주시청 홈페이지)]

 

6훈(6訓) 6가지 가훈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말라.’ 벼슬을 하면 욕심의 끝이 없어 권력에 맛을 들이게 되고, 결국 다툼에 휘말려 온 가족이 화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최부잣집은 돈은 벌되 권력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선택과 집중, 이른바 정경분리(政經分離)를 실천한 것이다.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최부잣집은 1년 소작료 수입은 1만 석을 넘기지 않았으며, 그 이상은 소작료 할인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다른 부잣집들이 소작료를 수확량의 70% 정도 받았다면 최부자는 40%에서 멈췄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하는 게 우리네 인심이었지만 최부자가 논을 사면 박수를 쳤다고 한다.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천 명씩 굶어 죽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가진 논과 밭을 그야말로 헐값으로 내다 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부잣집은 이런 논과 밭을 절대로 사들이지 않았다. 가진 사람이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1년에 약 1,000석의 쌀을 과객들의 음식 대접에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과객들이 묵고 가는 사랑채에는 별도의 뒤주를 둬 누구든지 쌀을 가져가 다음 목적지까지 노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부잣집의 인심은 널리 알려졌으며, 민란 등 사회적 혼란기에도 폭도들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주변 사람이 굶어 죽는데 나 혼자 만석꾼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부자 양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쌀을 무료로 나눠줬다.

 

여섯째,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이 보릿고개 때는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시집온 후 3년간은 무명옷만 입도록 했다. 절약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6연(6然) 자신을 지키는 지침

또한 위의 六訓을 지키기 위해 자녀들에게 6가지 지침인 자신을 지키는 교훈인 6(六然)’을 익히게 하였다.

1.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처신하라.

2. 대인유연(對人悠然) : 사람을 만났을 때 유연하게 대하라.

3.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진다.

4. 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이 있을 때 과감하게 행동한다.

5. 득의담연(得意淡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한다.

6. 실의태연(失儀泰然) : 뜻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태연하라.

 

흔히 빌 게이츠를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으로 비유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경주 최부자와 같은 참다운 부자가 있었다. ‘가진 자가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노블레스 오블리주)’ 멋진 부자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경주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은 다음의 금언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재물은 분요(똥거름)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경주 최부자 댁 큰 사랑채(사진:경주시청 홈페이지)]

경주 최부자 고택(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44)

경주에는 교동(校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신라 때 국학이라는 학교시설이 있었던 마을이며, 지금의 경주향교가 그 터라고 알려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이 마을에는 경주 최부자집으로 널리 알려진 최씨의 종가도 있는데, 교동은 이 최부자 집을 비롯한 몇 채의 한옥들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곳이자 흙담에 기와를 얹은 담장들이 아름답고 인상적인 동네다. 최씨 고택 안마당에는 신라시대 절터나 건물터에서 사용했을 법한 주춧돌과 장대석 등 많은 석조물이 조경석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이 또한 즐거운 감상 거리다. 종가댁은 현재 9대째 대대로 살고 있으며, 1700년경 이 가옥을 지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지금 집을 지키는 이는 종손이 아닌 관리인이며, 옆집인 소 종가는 교동법주라는 전통주를 대()를 이어 생산하고 있다. (*자료:네이버 지식백과, 한옥의 미, 2010. 7. 15., 서정호)

(주 최부자 댁 곳간, 경주시청 홈페이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이곳에서 널리 인정을 베풀었던 곳이다.]

 

 

 

마지막 부자 최준(1/2편)-경주 최부자댁-400년 부의 비밀

경주 최부자댁 ‘경주 최부자댁’은 12대 400년간 만석꾼의 부를 지켜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위대한 가문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의 17 세손이며 조선시대 경주에서 '최부자 가문

richlevel.tistory.com

 

마지막 부자 최준(2/2편)-경주최부자댁-400년 부의 비밀

교육사업 지원 최준이 독립운동 자금을 많이 지원하다 보니 재산도 점점 줄었다. 해방 후, 일제의 신탁 관리하에 있던 만석꾼 재산의 3분의 1이 되찾아지는데 그는 이것을 두 차례에 걸쳐 교육사

richlevel.tistory.com

 

 

경주최부자교육아카데미-교촌교동마을-12대400년최부자댁교훈배우기

경주 최부자 교훈 경주최부자는 12대 400년 동안 부와 명예를 이어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참부자의 시대정신이다. 동서양을 통해 수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경주최부자

richlevel.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