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댁
‘경주 최부자댁’은 12대 400년간 만석꾼의 부를 지켜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위대한 가문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의 17 세손이며 조선시대 경주에서 '최부자 가문'을 일으킨 1대 정무공 최진립(의병장)에서부터 12대 최준(독립운동가)까지 이르는 가문을 칭한다. 1대 정무공 최진립 장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며 무관으로 참전했는데 동생 계종도 같이 참전했다. 병자호란 때 69세인 노구를 이끌고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최진립의 노비였던 '옥동'과 '기별'은 평생 최진립을 모셨다. 이들은 최진립을 따라 참전하여 주인과 같이 장렬하게 죽었는데, 문중에서는 忠奴閣과 표지석을 세우고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라를 위한 일에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 그 충의가 대단하다. 12대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최완(1889~1927)은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오랜 망명생활 끝에 38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들 형제의 애국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했다.
400년 부의 마지막 부자
경주 최부자의 11대는 최현식, 마지막 부자인 12대는 최준으로 사업가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교육자였다. 11대 최현식은 대한제국 때 진사를 지냈는데, 나라가 기울어지자 국채보상운동 등 적극적인 계몽운동을 펼쳤다. 마지막 부자 12대 최준은 최현식의 장남으로 최부자 집을 방문한 독립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광복 후에는 교육활동 등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마지막 최부자 최준(崔浚, 1884~1970)
호는 문파(汶坡)이고 본관은 경주이며, 경주 출신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 12대 마지막 '최부자'이다. 그는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한일병합에 충격을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전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투자했고, 일제 강점기 때 백산무역 주식회사를 만들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일제의 혹독한 감시 속에서도 상해임시정부 등 많은 독립운동 단체에 막대한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민립 (구)대구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최준은 독립운동가 안희제 선생과 함께 조선 최고 자본회사인 ‘백산무역’을 설립해 상해와 만주에 독립자금으로 보냈다. 그가 조달한 독립자금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백산무역회사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의 가장 큰 자금 공급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임시정부의 1년 예산의 3분의 1 정도 되는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23년 방영된 ’유퀴즈 187회 (명불허전 특집)‘에 따르면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의 6할은 최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라고 했을 정도다. 독립자금으로 총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보냈는데 당시 소 한 마리가 100~200원이었으니 현재 가치로 하면 1,000억 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의 전 재산을 담보로 운영하던 백산상회는 결국 부도를 맞게 되었고 3만 석에 해당하는 빚을 지게 되어 일제의 은행에게 모든 재산이 압류되었다. 이때 식산은행 아리가(有賀光豊) 총재가 최준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빚의 절반을 탕감하여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관련 독립운동가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이 집으로 피신하기도 하였고, 애국지사 최익현선생도 최부자댁에 머물렀고 의친왕 이강이 머무면서 최준에게 문파(汶坡)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10대 시절부터 경주 최부자집을 방문한 최익현, 신돌석, 최시형, 손병희 등의 영향을 받아 항일 독립 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최준과 관계된 독립운동가들은 최준의 장인 김정섭과 그의 동생 김이섭, 김응섭을 비롯하여, 사촌 자형 박상진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백산무역을 함께 운영한 백산 안희제 선생,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려 한 강우규 의사, 일본 왕궁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 저항시인 이육사, 다물단을 만든 임시정부 법무차장 남형우, 임시정부 재무차장 윤현진 등 수 없이 많다. 이육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인 외삼촌이자 독립운동가 허규 선생과는 해방 후 대구의 아양음사(詩會)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해방 후 최준은 김구를 만난 자리에서 안희제(號 백산)에게 전달한 자금이 한 푼도 빠지지 않고 전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백산의 무덤에서 그를 기리며 통곡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전 재산은 교육사업에 뜻을 둔 최준의 뜻에 따라 대구대학교(영남대학교전신) 재단에 기부하였다.
ⅱ편에서 계속 The story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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